가수 이미자 프로필 나이, 딸 정재은 프로필 남편
한국 트로트의 살아있는 전설, 이미자
대한민국 가요사에서 이미자라는 이름은 단순한 가수가 아니라 ‘시대의 목소리’로 불립니다. 그녀의 노래는 한 세대의 삶과 감정을 그대로 담아내며, 한국 트로트의 정체성을 만든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가난한 어린 시절에서 세계적인 가수가 되기까지, 그녀의 인생은 노력과 끈기의 교과서라 불리기에 충분합니다.

여전히 80대 중반의 나이에도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며 세대를 초월한 감동을 주는 그녀의 삶은, 예술혼의 표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수 이미자 프로필 나이


- 이름: 이미자 (Lee Mi-ja)
 - 출생: 1941년 10월 30일
 - 출생지: 충청남도 청양군
 - 나이: 2025년 기준 만 84세
 - 데뷔: 1959년 ‘열아홉 순정’
 - 학력: 정규 과정 중단 (음악 재능으로 가요계 진출)
 - 직업: 가수
 - 가족: 딸 정재은(가수), 외손주 3명
 - 대표곡: ‘동백 아가씨’, ‘섬마을 선생님’, ‘여자의 일생’, ‘기러기 아빠’, ‘흑산도 아가씨’
 - 주요 수상: 대한민국 문화훈장 은관, KBS 가요대상, 한국대중음악상 공로상, SBS 가요특별상
 
이미자의 데뷔와 전성기



1959년 발표한 ‘열아홉 순정’으로 단숨에 대중의 사랑을 받기 시작한 이미자는 1960~1970년대 가요계를 장악했습니다. 전쟁 이후의 상처와 서민의 삶을 대변하는 가사, 그리고 절제된 감정 표현으로 ‘기러기 아빠’, ‘섬마을 선생님’, ‘여자의 일생’, ‘동백 아가씨’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습니다. 특히 ‘동백 아가씨’는 발표 당시 정부 검열로 금지곡이 되기도 했으나, 오히려 더 큰 국민적 사랑을 받으며 그녀를 ‘트로트의 여왕’으로 만들었습니다.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녀가 발표한 노래는 2,000곡을 넘어섰고, 지금도 그녀의 곡은 전국 노래방 애창곡 목록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미자의 음악적 스타일과 의미

이미자의 노래는 단순한 트로트가 아니라, 한국인의 삶의 서사를 담은 예술입니다. 그녀의 음색은 따뜻하면서도 애절하고, 가사의 감정을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무대에서 보여주는 절제된 몸짓과 표정은 ‘노래는 감정의 절제가 있어야 한다’는 철학을 상징합니다. 특히 ‘동백 아가씨’는 일본, 중국, 동남아 등에서 리메이크되며 한류 이전 시대의 음악 외교 역할을 했습니다.
이미자의 결혼과 남편


이미자는 두 번의 결혼을 했습니다. 첫 번째 결혼은 젊은 시절 이루어졌으나, 불행하게도 가정 폭력으로 인해 이혼을 맞았습니다. 이후 방송국 PD였던 김창수 씨와 재혼했으나, 종갓집 큰며느리라는 부담과 함께 이혼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결혼 생활의 어려움 속에서도 그녀는 무대와 음악에 자신을 헌신했고, 그 과정에서 딸 정재은을 낳았습니다.
이미자의 근황


2025년 현재 이미자는 여전히 왕성한 음악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23년에는 데뷔 65주년 전국 투어 콘서트 ‘이미자의 노래 인생’을 개최해 팬들의 기립박수를 받았습니다. “노래는 늙는 게 아니라 깊어지는 것”이라는 그녀의 철학처럼, 지금도 수많은 후배 가수들이 그녀를 “살아있는 교과서”라 부르며 존경합니다.
가수 정재은 프로필 나이 남편


- 이름: 정재은 (鄭在恩) / 일본 활동명: Cheuni (체우니)
 - 출생: 1964년 8월 25일
 - 출생지: 서울특별시
 - 나이: 2025년 기준 만 61세
 - 국적: 대한민국
 - 신체: 157cm
 - 학력: 정란여자상업학교, 서울예술전문대학 국악과 전문학사
 - 가족: 어머니 이미자(가수), 남편(일본인 회사원), 딸 1명, 외손주 3명
 - 데뷔: 1970년대 후반 일본 ‘물망초’, 1980년대 초 국내 ‘항구’
 - 대표곡: ‘항구’, ‘어차피 떠난 사람’, ‘무정한 당신’, ‘연락선’
 - 소속사: 데이치쿠 엔터테인먼트 (일본)
 
어린 시절과 가족사


정재은은 국민가수 이미자의 딸로 태어났지만, 그녀의 어린 시절은 쉽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정진흡(콘트라베이스 연주자)과 이미자는 1966년 이혼했고, 두 살이던 정재은은 아버지를 따라가며 어머니와 생이별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연락이 닿지 않아 “평생 어머니를 단 세 번밖에 만나지 못했다”고 고백한 적도 있습니다. 그만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상처는 깊었고, 이는 그녀의 인생과 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음악적 재능과 데뷔


정재은은 이미자의 음악적 DNA를 그대로 물려받았습니다. 10대 시절 일본에서 ‘물망초’로 데뷔하며 어린 나이에 일본 무대에 섰고, 이후 귀국 후 ‘항구’를 발표하며 국내에서도 인기를 얻었습니다. ‘항구’는 1980년대 초 당시 조용필에 이어 음반 판매량 2위를 기록할 정도로 큰 히트를 쳤습니다. 이후 ‘어차피 떠난 사람’, ‘남몰래 흘린 눈물’, ‘무정한 당신’ 등 잇따른 히트곡으로 트로트계의 유망주로 자리 잡았습니다.
시련과 일본에서의 재기



그러나 1986년 아버지의 빚 문제로 가정이 파탄에 이르며 일본으로 도피성 이주를 해야 했습니다. 한동안 밤무대에서 생계를 이어가야 했고, 가수 생활을 중단하기도 했습니다. 전성기를 뒤로하고 생활고에 시달리던 그녀는 1999년 김연자의 소개로 일본 음반 관계자와 만나 ‘체우니(Cheuni)’라는 이름으로 다시 무대에 섰습니다.


데뷔곡 ‘도쿄 트와일라잇’은 일본 오리콘 엔카 차트 1위를 기록하며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후 일본 레코드대상 신인상, 유선대상 우수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하며 일본에서 가장 성공한 한국인 엔카 가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첫 번째 결혼과 이혼



1987년 그녀는 당시 유명 DJ였던 한신우와 결혼했습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과 가정 문제로 인해 결국 이혼을 하게 되었고, 두 사람 사이에는 딸 한 명이 있습니다. 정재은은 이후 오랜 공백기를 가지며 개인적인 재정난과 심적 고통을 이겨내야 했습니다.

재혼 남편과 가족
시간이 지나 일본에서 활동하던 정재은은 일본인 회사원과 재혼했습니다. 남편은 조용하고 성실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으며, 별도의 결혼식 없이 조용히 혼인신고를 마쳤습니다. 첫 결혼에서 태어난 딸은 일본에서 성장해 현재 결혼하여 세 자녀의 어머니가 되었고, 정재은은 세 명의 외손주를 둔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첫째 외손주는 런던 유학 중이며, 둘째는 서울대학교 재학 중, 셋째는 고등학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모녀의 화해와 2024년 첫 합동 무대
수십 년간 단절되었던 이미자와 정재은 모녀는 세월이 흐르며 조금씩 마음을 열었습니다. 2024년 12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정재은의 디너쇼에 이미자가 깜짝 등장하며 두 사람은 생애 첫 합동 무대를 가졌습니다. 60세의 딸과 83세의 어머니가 함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많은 관객들에게 눈물과 감동을 안겼고, “한국 가요사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라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최근 근황
2025년 현재 정재은은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25년 개봉한 영화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에 특별 출연하며 연기에도 도전했고, 같은 해 11월 KBS ‘가요무대’에 출연해 오랜만에 국내 팬들에게 무대를 선보였습니다. ‘이미자의 딸’이라는 수식어 대신, ‘가수 정재은’, ‘엔카 가수 체우니’로 자신만의 음악적 세계를 구축한 그녀는 여전히 관객들에게 진심 어린 무대를 전하고 있습니다.
결론


이미자와 정재은은 한국 대중음악의 두 세대를 대표하는 모녀 가수입니다. 한 사람은 트로트의 전설로, 또 한 사람은 국경을 넘어 일본 엔카계에서 한국인의 혼을 노래하는 가수로 존재합니다. 세월의 상처와 화해를 지나, 지금의 두 사람은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예술가로서 진정한 연결을 이뤘습니다. 이미자의 목소리가 시대의 감성을 대변했다면, 정재은의 노래는 그 감성을 세계로 확장했습니다. 결국 두 사람의 인생은 ‘노래로 이어진 모녀의 서사’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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